얼마 전 마구잡이로 보드를 타다가 굴어 떨어진 이후로 내 왼쪽 손목이 영 낫질 않고 있다. 이제 정말 거의 나아가는데 싶다가도 조금 과한 행동을 하다 보면 손목이 존재감을 드러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때문에 시작하고서 한 달 이상을 쉬지 않았던 운동을 석달 이상 푹 쉬었고, 그 때문에 손목 뿐 아니라 마음도 상당히 불편해져 있던 터였다. 더군다나 안달이 난 터라 덜 나은 상태에서 운동을 진행하다 보니 왼쪽 팔꿈치 쪽도 불편하게 되고 말았다. 여러모로 이보다 엉망진창일 수 없는 상태였다.

이는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독단적으로 판단을 내린 결과였다. 아마 병원부터 찾아가서 손목을 내밀어 보였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깁스나 약 따위의 적절한 처방을 받아서 2, 3개월 정도로 쉽게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당장에 나라도 비전문가가 만든 어플리케이션 프로젝트를 본다면 혀를 끌끌 찰 거면서 대체 왜 전문가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지.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자만심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마음의 병도 결이 비슷하다. 심리학의 존재 이유도 아마 마음이 병 난 사람들을 위해서일텐데, 나는 나 자신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독단적으로’ 믿어버렸다. 나의 하루를 검열하고 끊임없이 완벽해지라며 채찍질했던 셈인데, 그야말로 독재에 의한 탄압을 끊임없이 받아온 셈이다.

책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혹은 ‘하고 싶은데’라고 말하면서도 행동에 나서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아예 눈을 돌리고 싶어질 지경이라면, 그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자책 때문에 너무 지쳐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나는 자책에 너무 지쳐 있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냐’며 다그치지 않았는데 정작 나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괴롭히고, 지쳐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책의 저자, 이시하라 가즈코는 ‘자기중심 심리학’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욕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글이 말하고 있는 바는 막연히 ‘뻔하다’고 생각할 법한 그런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완전히 다르게, 진실되게, 새롭고도 긍정적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 예제들이, 그 당연하고 뻔하다고 했던 생각들을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와 너무나 쉽게 오버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확히 책의 ‘환자’들과 동일한 패턴으로 삶을 살아 오고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말이다.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에게, 병은 의사에게, 뭐 그런 이야기다. 이 책은 너무 힘들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집어든 것 치고는 너무나 유익하고 좋은 치료제였다. 나의 선입견과 독단적임은 또 이렇게 1패를 기록했고, 나는 낯이 뜨거웠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