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갈증을 해소하려면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 자꾸 사이다, 콜라 따위를 목젖에 들이붓고야 만다.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는 듯 하다가도 끈적함이 입 안에 잔뜩 엉겨붙고 본질적인 갈증은 해결조차 되지 않는다. 늘 이런 실패를 이어간다. 그래도 물을 더 마시고 싶어진다, 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고 자위를 하곤 하지만, 과연 어떨런지.

글쓰기 관련 책이 딱 이런 느낌이다. 사실상 아무 것도 안 마시는 것보다는 낫구나, 하는 느낌 때문에 어떻게든 쥐고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읽은 책,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사실 유시민님의 글을 읽을 때면 뭔가 확실하게 이거다, 하는 문장이 없었다. 평이한 문장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고, 그래서 이 책도 ‘유시민’이라는 유시민님의 이름에 기대어 구매한 거지, 큰 기대는 없었다. 막상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 평이한 문장으로 자신의 뜻을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도 굉장히 많은 품이 드는 일이구나. 평이하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실제로는 굉장히 계산적인 문장들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글쓰기는 재주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논리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집,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실제로 책의 후반부에는 아름답지 않은 문장들을 선보이고, 어떤 식으로 고치면 좀 더 운율이 맞는지, 논리적인지, 우리말을 해치지 않는지 보여주는데 그 건건의 예제들을 보면서 뻣뻣했던 내 목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유시민님은 이 책에 대해 다음처럼 평했다.

시나 소설을 쓰고 싶은 독자라면 앞에서 소개한 김형수 시인의《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김연수 작가의《소설가의 일》같은 책을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살아 있는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태준 선생의《문장강화》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에세이, 신문 기사, 문학평론, 사회 비평, 제품 사용설명서, 보도자료, 문화재 안내문, 성명서, 선언문, 보고서, 자기소개서, 논술 시험, 운동경기 관전평, 신제품 사용 후기, 맛집 순례기 같은 것을 잘 쓰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시나 소설도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의견이 녹아들어있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역시 이 책을 거쳐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썼다.

그때부터 1987년 말까지 약 2년 동안 숱한 성명서, 선언문, 홍보 전단, 팸플릿, 리플릿을 썼다. 내가 속했던 모든 조직과 단체에서 글 쓰는 임무를 맡았다. 문학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료를 보고 중요한 정보를 파악한 다음 핵심을 요약하고 우리의 주장을 덧붙이는, 재미는 별로 없고 스트레스는 아주 많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짧은 시간에 더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글 쓰는 일이 점점 수월해졌다. 글은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글은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라며 1980년대의 일을 언급했다. 지금은 2020년.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축적한 글의 분량은 유시민님의 글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을 터. 이 정도의 분량을 쌓아온 그의 글에 세월과 노하우가 묻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깊이감 있는 글을, 나는 ‘평이하다’고만 평가한 것이다.

왜 그랬냐면, 당연히 잘 쓴 글의 기준, 눈높이가 세상이 주입한 형태 그대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시민님은 내가 잘 썼다고 생각한 글들을 ‘못 쓴 글’이라고 평했다.

공무원들이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다. 평소 그런 글을 읽고 그런 글을 쓰기 때문에 늘 하던 것처럼 했을 뿐, 그들 자신은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던 바를 그대로 꼬집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이 꼬집혀서 살점이 떨어진 건 아닌가, 몸 구석구석을 더듬게 된다. 그렇게 글을 읽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 비록 아팠지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