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과연? 이것 저것이 있지만 역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크고 숱한 고민이었다. 사랑이나 우정은 사실, 물론 이것들도 엄청 크지만, 고민의 양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 되려 스쳐 지나가는 인연, 가벼운 인연, 크고 작은 관계들이 나에게 깊고 많은 고민을 안겨 주곤 했었다. 중요하지 않은 관계임에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점이 날 힘들게 했다. 정말 신경쓰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정말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에 속하게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아마도 사람 관계에 크게 고통받았던 모양이다. 당장 책 내용만 봐도 전 아내와의 이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가깝고 싶지 않은 사람과 밀접하게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런 이유로 이런 고민을 안고 경험하고 처리해 나가면서 결국 신념으로까지 굳히게 된 것이리라.

나의 어린 시절. 난 관계들에 심하게 치인 탓에 병에 깊게 물들어 있었다. 뭘 하든 전혀 신경도 안 쓸 사람들의 눈치를 봤고, 내가 만들어낸 허상의 것들에 억눌려서 도저히 깨끗한 관계들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아마 그 때, 이 책을 봤더라도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그냥 책이니까 할 수 있는 이론적인 내용들이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그만큼이나 부족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부딪혔고, 헤쳐 나갔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자립을 하기 위해선 의존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의존하지 않으려고 모든 관계를 끊어낼 듯 행동했었는데, 실은 완벽히 ‘종속’되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왕왕 있었다. 나의 자립에는 트러블이 가득했다. 잔뜩 병들어 삐쩍 곯은 닭같은 시절이었다.

의존할 곳을 점점 줄여 소수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에게 종속하는 상태입니다.

저자의 글에서도 왠지 모를 그 ‘병듦’을 느꼈다. 정말 ‘병들었던 사람’이었음을 뼛 속 깊게 느꼈고, 공감했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 그 결과물에 어느 정도의 감동도 느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왠지 모를 반항심도 스멀 스멀 솟았는데, 아마 내가 해내지 못한 걸 해낸 게 아니꼬운 걸지도 모르겠다.

책은 꽤 길고, 생각할만한 다른 내용들도 많지만, 결국 핵심은 자립에 관한 내용이었고, 공감했다.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화폐 정도일까.

화폐는 애당초 신뢰 관계의 대체물에 지나지 않기에 신뢰 관계가 있으면 화폐가 없어도 어떻게든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유념해 두세요.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