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로 가는 길에 별 생각없이 읽을 책을 선정했다. 리디북스 서재로 들어간다. 할인하니까 사놓은 책들이 꽤 많기 때문에 아직까진 읽을거리가 넉넉한 편이었다. 이 책과 ‘여름은 오래 그 곳에 남아’, 두 가지를 선정했다. 그냥 내 마음 내키는대로. 그리고 경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를 타고 나면 움직이는 배경과, 나와, 시간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대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주에 도착하고 나서는 되려 버스에서 보낸 시간보다 못한 시간을 잔뜩 보냈던 기분이 든다. 왜 그런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 그것도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예상 외의 재미를 가져다 준 책이었다. ‘여름은 오래 그 곳에 남아’는 아예 켜보지도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다.

제목은 딱딱하기 그지 없다. 원래 제목은 무엇일까. The E-Myth Revisited라는 제목인데, 책의 초반에 언급되었던 ‘미신화된 기업가 신화’를 의미하는 뜻일테지. 차라리 그런 뉘앙스를 살려줬으면 이토록 딱딱한 제목이 되지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읽기 싫어서 표정을 찡그리지도 않았을텐데.

게임을 만들면서 간혹 생각했다. 혹시 어떻게 잘 풀려서 나의 회사를 차리게 된다면 어떨까. 1인 기업처럼 될려나.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진다. 나는 일을 하다가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대접하고 하는 느긋한 상상을 한다. 누군가는 카페를 창업하면서 나와 비슷한 상상을 했다가, 카페에서 느긋한 건 손님 뿐이라는 말을 남겼었다. 브런치의 글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나도 실질적인 사업의 현실을 하나도 모르니 마음껏 망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은 나의 망상을 무자비하게 깨뜨린다.

기업가 열병을 앓는 기술자는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그 일을 택하여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너무나 좋아해서 시작했던 그 일은 어느덧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리고, 낯설고 불쾌하고 잡다한 업무 속에 묻혀 버린다. 기술자는 자신이 지닌 독특한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했지만 어느덧 그 일의 특별함은 사라지고, 생계유지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그들은 당신을 원한다. 고객들은 이제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만족하지 못하며,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당신은 눈썹이 휘날리게 일을 한다. 그러다가 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저글링의 대가인 당신이 공을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처음의 열정은 갈수록 식고, 좋아하는 일 이외의 것들에 치여서 천천히 고립된다. 사업은 얼어붙는다. 뭐 그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재밌는 일도 매일 매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겨우 보름 남짓 한 나의 1일 1쓰기도 벌써 상당히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사업은 얼마나 더 심할까.

책은 커버 본인이 ‘사라’라는 파이 가게 사장에게(그야말로 내가 사업을 했다면 했을 그런 모습을 한) 기술자 외의 것들에도 충실해야 한다. 남에게 이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고 수차례 강조한다.

달리 표현하면, 기업가는 꿈을 꾸고, 관리자는 조바심을 내며, 기술자는 심사숙고한다.

자기계발서가 가지고 있는 한계, 동어 반복이 없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라라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나의 기존의 관념을 와장창 깨뜨리는 그 기분은, 나에게 뭔가 새로운 지평과 목표를 세워주는 듯했다. 나는 그를 만끽하며 끝까지 읽어 나갔다.

본질적으로, 사업의 모든 부분을 알아야 하며, 턴키 혁명, 즉 맥도날드가 만든 방식, 사업 그 자체를 판매할 대상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고, 내가 해야할 일을 최대한 줄여가라는 것이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된다는 부분에서 솔직히 조금 거리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사라는 ‘나는 파이를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게임이 만들고 싶을 뿐이야.

결국 사업의 모든 부분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첫 단계. 마케팅이든 회계든, 내가 관심 없는 것들에도 모두 일일이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나의 마음 깊은곳에 자리잡은 보수적인 성향은 ‘그냥 가만히 묵묵히 해나가면 알아줄거야’라고 말하지만 이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니까, 해나가야 하겠지.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