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유시민

수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지금도 『사기』를 읽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어서다.


인간의 이야기. 네러티브. 스토리텔링.

밀실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었으니 기록이 남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사마천은 마치 그 밀담을 직접 들은 것처럼 상세하게 썼다.

한신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만한 역사의 사례를 총동원해 괴통의 발언을 창작했다는 말이다.

인물과 사건이 역사의 뼈와 살이라면, 제도와 문화는 혈관과 신경이다. 사회와 시대를 입체로 재현하려면 제도와 문화를 함께 보아야 한다. 사마천은 단순히 제도 변경 사실만 기록한 게 아니라 제도에 적응하고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의 행동을 함께 살피면서 제도사와 문화사를 썼다


비판적인 시각을 완전히 체화.

제9장에서 만날 『총, 균, 쇠』와 『사피엔스』의 저자들은 사마천보다 2,000년 늦게 태어났다. 그들은 우주와 자연과 자기 자신과 문명에 대해 인간이 긴 세월 동안 새로 찾아낸 수많은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다. 인터넷과 검색엔진을 활용해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환경에서 컴퓨터로 대중적이고 세련된 문장을 쓴다. 죽간서를 산에 감추어 두려 했던 사마천과 달리, 책을 쓰면 세계의 주요 언어로 즉각 출판한다. 이런 변화를 발전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 균, 쇠』와 『사피엔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기』보다 더 훌륭하거나 감동적인가? 인간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더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졌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한다는 입문장벽이 없는 것만으로도 더 잘 깊이 와닿을 순 있을것이다.

전해 오는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고 관습의 원리, 정치의 법칙, 문명의 속성,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비슷한 시기의 자료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진리의 길을 벗어나 발을 헛디디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역사학자, 『코란』(Koran) 주석가, 『하디스』(Hadith) 전승가들에게 자주 일어났다.

어디선가 들어 본 말 같지 않은가? 헤로도토스를 ‘산문 작가’로 몰아세운 투키디데스가 이렇게 말했다. 할둔이 겨냥한 비판의 표적은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은 알 마수디(886?~ 956)였다.4 믿을 만한 역사 기록이 부족할 때 역사가는 투키디데스와 할둔이 썼던 방법으로 사실을 평가하고 선택해야 한다. 할둔은 풍부한 문헌 기록을 활용했지만 무조건 믿지는 않았으며 상충하는 다른 기록과 상식에 비추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을 때만 가치를 인정했다.

이것은 논증이 아니라 왕조 흥망의 패턴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아랍 세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할둔이 이러한 패턴을 찾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인접한 페르시아 사람들이 B.C. 6세기에 벌써 거대한 제국을 세운 것과 달리, 아랍인은 오래 지속되는 제국을 한 번도 건설하지 못했다.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 이전과 이후를 가릴 것 없이 크고 작은 부족 국가와 왕국이 명멸을 거듭했을 뿐이다.


경험주의적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 한계점

그런데 『역사서설』에는 역사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특징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 전체에 걸쳐 길고 지루한 종교적 찬사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는 점이다.


역사와 종교가 즉 하나이던 삶이었을 것이다. 되려 그 둘을 떼어 생각하는 게 이상했겠지.

종교와 국가 권력이 한몸이 되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회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면 ‘신성모독’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을 위험에 봉착한다. 그 위험을 피하려면 의례적 신앙고백을 공개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이단이라는 의심을 받을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역사책을 집어 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누설한다.”8 단순히 언제 썼고 언제 출간했는지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정치적・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는지 점검해 보라는 카의 말이다.

‘중동(中東, Middle East)’은 서구 사람들이 중국, 일본, 한국 등 극동(極東, Far East)보다 가까운 아시아 지역을 표시하려고 만든 말이다


서구중심적 단어를 아무 생각없이 따라읽는 사람들. 아니 나.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 권력을 얻지 못하고 ‘반체제 시국 사범’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때 팔레스타인은 로마제국 군대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세속의 왕이 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대속(代贖)의 죽음’과 ‘부활의 기적’이라는 신화로 세계 종교의 창시자가 된 예수와 달리, 무함마드는 신(알라)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예언자를 자처하면서 국가 권력의 화신이 되어 기독교와 쌍둥이처럼 닮은 또 하나의 세계 종교를 만들었다.

이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무슬림 사회는 무함마드 사후 100년에 걸쳐 『코란』과 『하디스』에 대한 공식 해석인 ‘이즈마(Ijma, 공동체의 합의)’를 만들었다.


종교적 독재

『코란』과 『하디스』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려 주는 답이 있을 리 없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의 권력자들은 스스로 답을 찾았고, 거기에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코란』과 『하디스』에서 ‘유추’해 냈다고 주장했다. ‘신이라면’ 또는 ‘예언자라면’ 어떻게 할지 추론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찾은 답을 텍스트로 정리한 것이 ‘키야스(Qiyas)’다.


권력이 종교와 밀착되어 왜곡되어간다. 권력은 어디에 붙어도 왜곡해버리는구나. 아니, 사실 권력의 부산물이 종교일지도.

예수 추종자들의 분쟁은 처음에 교회 안에서만 벌어졌다가 수백 년이 지난 후 동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에야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종교 탄압으로 번졌다.

그런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벌어졌다. 종교적 이견은 곧바로 국가 권력을 둘러싼 세속의 쟁투로 전환되었고, 정치적 이해 다툼은 종교적 진리 다툼의 외피를 둘러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