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책 메모] 역사의 역사
역사의 역사 - 유시민
예수 추종자들의 분쟁은 처음에 교회 안에서만 벌어졌다가 수백 년이 지난 후 동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에야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종교 탄압으로 번졌다.
그런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벌어졌다. 종교적 이견은 곧바로 국가 권력을 둘러싼 세속의 쟁투로 전환되었고, 정치적 이해 다툼은 종교적 진리 다툼의 외피를 둘러썼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대단한 역사학자이자 볼품없는 이야기꾼이었던 랑케를 만나게 된다. 할둔이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이야기한 다음 대목을 보면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눈을 정화해 두자.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군주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성으로 꼽았다.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세금과 군역을 줄여 백성의 경제생활을 개선하라고 권하면서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고 말했다.16 군주가 백성을 사랑으로 대하고 보호할 때 진정한 의미의 왕권이 실현된다는 할둔의 견해와 일치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러니까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단어로는 쉽지만 실은 이게 무진장 어렵거든..
랑케의 첫 저서는 1824년에 발표한 『1494년부터 1514년까지 라틴족과 게르만족의 역사』(Geschichten der romanischen und germanischen Völker von 1494 bis 1514)다. 왜 하필 첫 저서로 라틴족과 게르만족의 역사를 썼을까? 랑케는 독일 사람이었고 유럽의 문명사가 로마제국 수립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 혹은 자신과 더 가까운 이야기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
1886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스스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던 아홉 권짜리 『근세사의 여러 시기에 관하여』를 집필했으니, 이런 인생을 산 인물에게는 ‘전문’ 역사학자 말고는 다른 합당한 칭호가 있을 수 없다.
삶과 목적의 방향을 완전히 같은 곳을 향하도록 하며 평생을 살아야 전문, 적이라 할 수 있다니 기준이 너무 빡씬걸
그런데 랑케는 여느 전문 역사학자보다 더 어렵게 글을 썼다. 랑케의 이름은 알지만 50권이 넘는 저서 가운데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이가 드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의 책은 ‘유럽사 연구자 전용 역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시민님이 극혐하는 글쓰기 방식 아닌가?
지독히 재미없게 글을 썼던 랑케가 ‘역사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학문적 업적이지만 다른 하나는 치명적이고 중대한 인식의 오류다. 랑케의 업적은 오류 덕분에 빛나며, 오류는 업적 때문에 돋보인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 역사학은 그가 이룬 업적의 토대 위에서 그가 저지른 오류를 극복하면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웠다. 이런 인물을 빠뜨리고 역사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는 과거의 오류에서 배우기 위함인데 역사의 기록도 역사의 역사이므로 오류가 있을수밖에 없다. 이런 메타적임이 참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