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김혼비

“지금은 좀 나아졌나? 저 선수 때만 해도 여자 축구가 특히 더 재활 프로그램이나 치료가 생각보다 허술해요. 프로는 그래도 덜한데 유소년 재활은 좀 헬이에요. 그래서 쟤는 진짜 대박이다 , 세상에 저렇게 축구 잘하는 애가 있을까 싶던 애들 중에도 고등학교 때 한번 다치고 나서 예전으로 못 돌아가는 애들 많았거든요. 회복 덜 된 상태인 거 모르고 뛰었다가 아예 선수 생활 끝난 애도 있고. 그래서 한번 크게 다치면 그게 제일 무서워요. 회복할 수 있나? 예전처럼 할 수 있나? 지금 받고 있는 치료들 다 제대로 돌아가는 거 맞겠지? 누가 뭘 놓쳤으면 어쩌지? 걔네들처럼 여기서 끝장이면 어쩌지? 이런 거 계속 생각나면……. 아 , 정말 미쳐 버려…… 너무 무서워요. 축구인들 절반이 재활할 때 종교 가진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에요.”

옛날보다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악습으로 남아 있는 폭력적인 체벌 ,(어쩌면 체벌적인 폭력) 몸과 영혼을 깎아 내는 훈련 방식 , 단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한 듯 요구되는 개인적인 삶의 희생 , 부상의 고통 , 재활이라는 고독한 싸움들을 다 이겨 내고 좋은 선수로 살아남아서 프로 무대까지 올라오는 것 , 생각보다도 아득하고 엄청난 일이었다.

아니지 , 가만히 따져 보니 마이너스를 넘어 플러스 요인이다. ‘잘하든 못하든 모든 선수들에게 골고루 뛸 기회를 줘야 한다.’라는 감독님의 지론 때문에 나도 자꾸 연습 경기에 나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데 , 나를 대신해서 다른 선수 아무나 들어가는 편이 팀 전력 강화에는 보탬이 될 테니 말이다. 그것도 훨씬! 이쯤 되면 나의 결석을 두고 내가 팀원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남길 게 아니라 팀원들이 나에게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남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끝까지 “죄송합니다.”라고 쓰지 못하고 , 대신 “모두들 모쪼록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무난한 인사로 마무리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다. 나도 정말 미안하고 싶었다. 미안하고 싶었다고! 새삼 깨달았다. 자신의 부재를 누군가에게 미안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강자라는 것을. 미안할 수 없는 , 누구도 그 미안함이 필요 없는 입장도 어딘가에는 늘 있으니까.

어떤 새로운 세계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그저 생각에서 그칠 뿐 실제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일 때 그 안전한 거리감 속에서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친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잘하지 못할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을 생전에 만나 보기도 힘든 스크린 속 스타에게는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그동안 감독님이 해 왔던 말들 , 그동안 우리가 연습해 왔던 것들 , 다 필요 없음! 심지어 절대 해서는 안 됨! 오직 공을 멀리 차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중요한 시합 때마다 감독님이 결국 급하게 꺼내 드는 전술은 바로 그 유명한 ‘뻥 축구’였던 것이다.

나보다 몇 년씩 축구 더 한 사람들을 기술로 이길 수는 없지만 뻥 볼 차는 거라면 어느 정도 승산도 있다. 그렇다면 기본기 연습 대신 , 공을 세게 멀리 차는 연습에만 집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기본기를 무시하고 ‘먹히는’ 것만 익히는 이런 식의 ‘얕은 공부’는 질색이지만 , 이런 건 ‘얕은 수작’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지만 , 뻥 축구가 아니면 다른 답이 없는 팀이 있는 것처럼 , 얕은 수작 아니면 뾰족한 수가 없는 선수도 있는 것이다

기본기부터 다져야 한다는 강박에 질려 포기하고 쓰러지는 것에 비해 훨씬 나은 선택일테지만 심리적으론 역시 많이 아쉽다. 이놈의 근본주의

1년 동안 코치 언니의 인대를 무릎뼈에 딱 붙여 놓고 있었을 바로 그 나사. 생각보다 컸고 당혹스러우리만치 평범했다. 나사라는 게 다 소라 껍데기처럼 빙빙 비틀려 고랑이 진 물건으로 비슷비슷하게 생겼겠지만 , 그래도 인체에 들어갔다 빠져나온 나사가 책상이나 전자 제품에서 빠져나온 나사와 똑같이 생겼다는 게 새삼스레 신기하고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