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유시민

동학혁명에 대한 시각 변화는 박은식이 개명 유학자에서 전투적 민주주의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모든 역사가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변화는 당연한 것이니 자존심에 꺾이지 말도록

여기서 무치생은 사대주의를 벗어던지지 못한 조선의 지식인이고 금태조는 박은식 자신이다. 그는 청나라의 전신인 금나라 태조의 입을 빌려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제 민족의 역사를 지우고 중국을 숭배한 권력자와 지식인들을 꾸짖은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마음의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을 비아라 한다.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을 비아라 한다. 하지만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은 저마다 자기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고 한다. 무산계급은 무산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를 비아라고 한다.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는 저마다 자기들을 아라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라 한다.

그는 조선의 사서에는 당의 사서에서 가져온 것 말고는 안시성 전투 관련 기록이 거의 없고 당의 기록 자체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 조선의 역사가들은 사대주의에 빠져 연개소문의 승전 기록을 없애 버렸고 당의 사관들은 황제의 권위와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기록을 날조・왜곡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진단이 옳다면 안시성 전투 기록만 그랬을 리 없다.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다룬 모든 역사 기록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삭제・왜곡・날조했을 것이다.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리고 김유신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어린이용 위인전에서 처음 만나는 역사 인물이다. 세 사람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와 비교해 보라. 역사가 쓰는 사람의 철학과 연구 방법에 따라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새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절친한 이에 대한 기록도 주관적이고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는데 옛 사람은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