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책 메모]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꼭 집어 말하자면 아가시는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었다.
아가시는 “구조의 복잡성 혹은 단순성” 또는 “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의 특징” 같은 것이 생물의 객관적 척도라 믿고, 그 척도를 사용해 생물의 등급을 매겼다. 예를 들어 도마뱀은 “자손들을 더 많이 보살피기” 때문에 어류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기생충은 모두 싸잡아 단연코 하등한 생명체다. 기생충이 생명을 이어가는 방식을 보라. 빌붙고, 속이고, 더부살이하지 않던가.
관계가 중요한 동물은 자신의 중요도의 기준으로 모든 걸 측량한다.
그러나 아가시는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은 피부 아래 감춰져 있다고 믿었다. 페니키스 섬에서 강의하는 어느 시점엔가 그는 학생들에게 외피의 위험성에 관해 경고했다. 그 피조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비늘이든, 깃털이든, 깃이든 간에 말이다. 외피란 주의를 분산시키는 위험한 것, 분류학자들을 속여 사실은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는 생물들(예를 들어 고슴도치와 호저는 겉보기에는 아주 비슷하지만, 내부를 보면 완전히 다르다) 사이에서 유사성을 보게 하는 술책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가시는 신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내부야말로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이야말로 신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라고 했다.
아가시가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너무나도 시답잖게 여겼던 어머니와 이웃들, 학우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을 마침내 여기서 발견한 것이다. 데이비드가 손에 꽃을 들고 해왔던 일들은 “무의미”하거나 “소모적”이거나 “야심 없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저명한 아가시가 정의한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까지 해독해내는 작업이었다.
분류학의 의미,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접한 것만으로도 구원받은 기분이었겠지.
거의 20년 뒤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단언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느꼈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항상 그런 일을 잘했던 건 아니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는 내게 종종 아버지와는 다른 효과를 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라. 카뮈는 그것이 언제나 우리 대다수의 마음속에 있을 거라고 여겼다. 고통에 대한 그 처방이 어찌나 유혹적인지 18세기 시인 윌리엄 쿠퍼는 그것을 “거대한 유혹”이라고 표현했다.
자살충동
그 어디에도 갈 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기억이 난다. 바깥세상이 내미는 건 악의에 찬 복도들, 텅 빈 수평선들뿐이며, 안쪽 세상이 내미는 것은 쾅쾅 닫히는 문들뿐이라고. 빛을 발하는 건 전혀 보이지 않아, 1999년 4월 8일 일기에 쓴 말이다.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지하실로 내려갔다. 동물은 죽을 준비를 할 때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아직 읽기 전의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냥 내가 지하실로 끌린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작은 플라스틱 포장에서 알약을 한 알 한 알 꺼내 입 안에 집어넣는 의식을 치렀다. 1분에 한 알씩. 무신론자들도 의식은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