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의 요지는 단순하다.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조각해내는 일을 늘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 그가 의자를 예로 든 의도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겸손을 유지하라는 것, 우리가 믿는 것들, 우리 삶 속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늘 신중해야 한다는 걸 되새겨보게 해주는 사례인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분류학자들도 명명이라는 일에 대해 다소 미신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종을 최초로 명명할 때 그들은 그 최초의 표본을 특별한 명예를 부여한 매우 특별한 유리단지에 넣어둔다.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이 데이비드로 하여금 겁을 집어먹고 단 1초라도 질서에 대한 추구에서 물러서게 했을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혼돈이 공격해올 때면 더욱더 강한 힘으로 반격하는 그 특유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는 고기를 잡는 더 공격적인 기법을 발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그가 자신의 선지자에게 안내를 구하려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을 때 데이비드는 보고 말았다. 그 지진이 루이 아가시의 조각상을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부터 메어꽂은 광경을. 우스꽝스러운 장면, 급소를 찌르는 한 방이었다.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1924년에 《사이언스》에 발표한 〈과학과 사이어소피〉라는 글에서 그는 16세기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천문학자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를 영웅으로 칭송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형을 당하기 전 브루노는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 인용문을 독자들에게, 만약 그들이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차단해버린 적이 있다면 그들 역시 브루노를 살해한 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경고하고 비난하는 데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