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책 메모]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그는 왜 그토록 약에 반대했을까? 그건 약이 사람을 실제보다 더 강력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이 “신경계가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정말 그의 세계관이라면, 그가 그렇게 자기 과신을 경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집요함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가 말하기를, 그 모든 것의 허망함을 곱씹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몹쓸 짓인 이유는, 진화가 선물한 그 소중한 전기를, 너무나 많은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써야 할 그 신성한 이온들을 실존적 탐구라는 하수구로 흘려보냄으로써 글자 그대로 “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죽은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경험하지 못한걸 진심으로 이해하는 건 때론 절망적으로 불가능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경이로운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이고, 남들을 더 잘 도우며, 더 지적이고, (주사위를 던지거나 복권 번호를 뽑는 것 같은) 우연한 사건들을 가능한 정도보다 훨씬 더 잘 통제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꾸준히 확인됐다. 그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볼 때도 자기가 실패한 것보다 성공한 것들을 훨씬 더 쉽게 기억해냈다. 미래를 내다볼 때는 친구들이나 급우들보다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을 훨씬 더 크게 잡았다
자기기만과 자존감
이때 핵심은 자기기만이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연구가 밝혀낸바, 극단적 부인이나 기만은 오히려 적응에 해롭다고 나타났다. 그러나 순한 거짓말, 하얀 거짓말, 작은 장미봉오리 같은 거짓말은 무척 이로운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인지적 결함이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바로 긍정적 착각이다.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로 긍정적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좌절을 겪은 뒤에 낙담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릿이란 여러 특성들이 섞인 칵테일 같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 또는 더크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어떤 비난도 회피하기 위해 갖은 비열한 수를 썼고, 그래서 살아남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공격성의 바탕에는 낮은 자존감이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지만 그는 그 상식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30 그래서 자존감의 정도가 서로 다른 한 무리의 대학생을 모아놓고 그들을 모욕한 다음 누가 공격적으로 반응하는지 지켜보았다. 이때 폭력성은 남들에게 매우 불쾌한 말을 퍼부을 때 목소리의 크기로 측정했다. 시끄럽게 폭발하느냐 그리 시끄럽지 않게 폭발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곧 바우마이스터는 충격적인 현상을 목격했고, 그 현상은 그를 몹시 심란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미 아이들의 자존감을 부풀리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인 뒤에 발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격적으로 치고 나온 이들은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적 시각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우울한 사람들은 줄곧 알고 있던 그 사실을 바우마이스터와 동료 브래드 J. 부시먼은 그제야 발견한 것일 뿐이다.
하나 특기할 사항은 긍정적 착각 지수가 높게 나올 법한 이들 중 많은 수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특이한 기벽 하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손으로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