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책 메모]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 이연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 낭비를 하는 학생, 그것이 바로 나였다.
딴짓으로 그릴 때가 시간을 마련해 놓고 그릴 때보다 더 잘 그려진다.
시간을 마련한다는 게 그 자체로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망할 것 같다고?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일이다. 그 걱정을 하느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망함으로 가는 착실한 걸음이 아닐까.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런 생각도 했다. ‘또 내 자서전의 에피소드가 풍부해지고 있구나.’ 참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그런 마음들이 꽤나 도움이 된다
대상을 상상해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정확히는 상상했다기보다 기억을 꺼낸 것에 가깝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꺼내어 쓰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사물을 관찰하여 따라 그리고 기억해 두는 것은 마음속 그림 사전을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우리가 모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도 문법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계속 반복하고 들으면서 감을 익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관찰하다 보면 투시와 명암 또한 어느 정도 체득이 된다. 그 상태에서 이론을 배워야 거부감 없이 학습하고, 당신이 갖고 있는 궁금증을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겁먹지 말고 그려라.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는 질문에 몇 년째 대답을 못 하고 있다. 한 사람으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편히 좋아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크다. 이것은 열등감의 여러 증상 중 하나다.
취업 후 일 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회사 생활이 바빠서 그렇기도 했지만, 내가 그림으로 무엇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는 자괴감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분, 붓을 오래 놓으면 그 어떤 대단한 작가여도 다시 붓을 잡기 어렵다. 그림은 근육과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그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서는 진로 탐색의 기회가 굉장히 좁다. 그래서 그림 말고도 다른 일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다른 진로를 탐색하게 된다면, 그때 자신을 그림밖에 모르는 인간이 아니라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그림은 당신이 배신했다고 가차 없이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손안에 있으며 이따금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인데, 난 그런 용기가 있는가..하면..
많은 이들이 교육기관에서 원하는 그림을 배울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그런 그림은 절대 배울 수 없다. 스타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한다.
원하는 게임이란 환상
잘해야 즐거워진다. 그림이 정말로 지루하고 재미없을 가능성보다 당신이 아직 즐거울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잘하게 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스스로의 어설픔과 창피를 견디며 멋없는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
어릴 땐 자신이 늙는다거나 시간이 부족할 거란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기기에 뭔가 하나를 해도 큰마음을 먹고 시작해야 한다
사람을 완전 카메라처럼 찍어낼 것이 아니라면 표현에 많은 디테일이 필요하지 않다. 드로잉에는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과 생략을 위한 절제가 필요하다. 여러 표현 기법과 미술 이론을 배운 내가 드로잉을 한다고 하면 교수들은 싫어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까.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겠다. 그래, 드로잉을 하자.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을 한다. 생각보다 지난한 일.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모든 사람이 나 같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한다.
앞으로 남은 긴 세월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그릴지 찾기 위해 무엇이든 그려보는 일에 조급함을 갖지 않아도 된다. 뭐든 그려내어 여러 종이를 낭비해 보는 것.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 그만의 창작을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꼭 솔직해져야 한다. 이게 참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타인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내가 느끼는 온갖 지질한 감정들을 인정해야 글로 적을 수 있다. 눈으로 보기에 역겨운 진실들이 항상 도처에 있었지만 나는 비위를 견디면서 적어냈다.
나에게 가장 거짓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일 것이다. 가장 그럴듯하게 현실을 왜곡할 수 있으니까.
내가 입는 옷, 다니는 장소, 그리고 듣는 음악이 나를 드러낸다. 취향을 만들고 다듬어가는 과정은 일종의 퍼스널 브랜딩과도 연관된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며 연동성과 편의성, 그리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 같은 것을 배웠다. 그때 아이폰을 써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영 모른 채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비웃었을 것 같다.
이런 질문도 도움이 된다. 뭔가를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왜?’라고 묻는 것이다.
시간부족에 대한 강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의 장점만 조합해서 지금의 ‘이연’ 채널을 개설했다. 그림 유튜버를 검색했을 때 참고하고 싶은 스타일이 없었다. ‘이런 거 괜찮을 것 같은데 왜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만들었다
좋아할 때 배우는 것이 1이라면 따라 하면서 배우는 것은 10이다. 나와 무엇이 어울리는지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안목은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점점 단단해진다.
리뷰를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싶으면 ‘모르겠으니까 해봐야겠다’ 한다. 부딪친다고 생각보다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모르겠으니까 해보자. 겪어보고 판단하자. 자신의 시각을 기르자. 안목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품질 관리 요원이 있다.
그렇게 부르고 싶은 노래를 찾는 일이 영감을 찾는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때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의 세상에서 그림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근데 그림이 나에게나 중요하지 세상은 내 그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애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림 때문에 너를 좋아한 게 아닌데.
그는 어떤 진심을 믿고 있었다. 잔디를 그릴 때 잔디처럼 보이도록 어떤 덩어리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다 그리라고 가르쳤다. 그래야 진짜 잔디처럼 보인다고. 그래서 입시 때 우리 반 애들은 전부 잔디를 그리는 일에 아주 오랜 시간을 할애했고,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잔디를 그렇게 그려서 많은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했다.
그렇다면 긴 선을 왜 그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긋는 선의 길이는 시선의 길이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시각을 필요에 따라 넓거나 좁게 두어야 형태를 제대로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넓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말하는 완성도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선생님들도 그냥 나처럼 딱 여기까지만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각자의 이상한 점이 사회생활을 하면 감출 수 없이 삐죽 튀어나온다. 그것을 둥글게 만드는 것이 사회화의 과정일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럴 필요가 있지만, 당신의 날을 전부 죽여 스스로의 각을 지우거나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말이다.
강약은 이처럼 선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면이나 색으로도 가능하다. 글로도 가능한 것이 바로 강약 표현이다. 처음에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강약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더 강한 것 앞에서는 약한 것이 된다. 강약은 때와 환경에 맞추어 항상 변화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관찰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
어조에 일관성을 갖고 지속하다 보면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인다.
핵심은, 나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그림을 봐왔고, 그렇게 내가 봐온 사람 중 한 명도 같은 무드의 색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여러분이 써야 할 매력적인 색 따위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와도 같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거대한 화폭에 단순한 사각형 색면을 칠한 판화로 유명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기분’ 때문에 시도도 하지 않고 도망치지 말길 바란다. 당신이 당장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지금은 그럴 수 있어도 그게 평생 그럴까?
나는 그렇게 왜곡된 정보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나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걸 아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아래는 내가 스스로를 이해했다고 오해한 것들의 목록이다. • 나는 내가 창의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 나의 짧은 손톱이 그저 못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 나는 개인주의자라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싫다고 생각했다. • 나는 체육 수행평가 점수를 보며 내가 평생 스포츠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 나는 내가 32살까지 5평 자취방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 나는 디자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 나는 세상에 사랑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 나는 내가 끝없이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 나는 내가 그림만 그릴 줄 안다고 생각했다.
피드백은 그게 어떤 형태이든 우리에게 너무도 확실하게 와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피하고 싶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사람들의 반응이 대개 몹시 솔직하다는 것이다. 다들 두루뭉술하게 숨기려고 해도 잘 숨기지 못한다. 만약 그림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의견이 한둘이 아니라면, 안타깝게도 정말로 그림이 별로일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 몰라봐 주는 것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아닐 확률이 높다.
이러한 기분을 여러 번 겪어내어 이제야 할 수 있는 말인데, 그게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그 게시물이 비공개가 아닌 이상, 어딘가에 보여주기로 다짐했고 시도했고 게시물을 올렸다면, 조회수가 2와 3 정도일지라도······ 당신은 벽에 대고 말한 것이 아니다. 둘과 셋, 혹은 다섯과 연결된 것이다.
몰래 숨어서 연습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 그려서 깜짝 놀라게 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마라. 자연스럽게 항상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까지 남들에게 다 보여줄 것. 그것이야말로 강하고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방법이다.
내 약점의 핵을 찌르는구나
만화에서는 초반의 유키노를 ‘허영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옛날 작품이라 어쩔 수 없지만 그 만화가 나왔던 시절만큼 낡은 생각이었구나 싶다.
민낯을 그대로 까면 보통 유키노같을텐데 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나라에 국회가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미 수많은 법안이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법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항상 치열하게 법을 개정하고 시정하는 국가만이 시대에 뒤지지 않는 판단을 할 수 있고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야와 무관하게 내 모든 작업물을 보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만든다. 그래서 그저 내 마음대로 하기보다는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그 결과가 내 취향과 고집을 조금 빗겨간데도 남의 시선을 조금 더 배려해줄수 있다면.
나는 단지 모범생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지금은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당장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보다 더 멋진 칭찬이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림이 무섭다는 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다. 나도 이것을 경험했고, 현직 작가도 그럴 것이며, 혹은 그림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낄 것이다. 뭐든 욕심이 나면, 내 손이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게 실망스럽고 싫어진다.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실패를 아예 안 하려고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자신의 기대를 외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도 엄청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습작과 망작은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망한 그림은 나만 볼 수 있어, 하는 비밀스러운 희열(?)을 안고 망친 그림은 혼자 평생 간직하기로 하자. 괜찮은 생각이 아닌가? 망친 그림 그리겠다는 각오로 100번쯤 그리면 1번쯤은 좋은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슬럼프를 겪고 있는가? 나도 지금 그렇다. 당신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안이다.